“목회적 고민 총회가 풀어줘야”
이중직 목회자 … ‘신학적 정립’ 지원 요청 33.6%
성경적 근거 있다 89.3%, 일터서 숨긴다 35.5%
신학적인 고민은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선택하거나 수행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까?
예장합동 총회자립개발원과 예장통합 총회 등이 지난해 전국의 출석교인 50명 이하 교회 담임목사 중 실제 이중직을 수행하는 목회자 2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중직이 성경적으로 근거가 있다’(89.3%)고 생각하거나, 동료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가지려할 때 ‘신학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해준다’(92.7%)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은 점은 대다수 목회자들이 어느 정도 신학적 확신 속에서 이중직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35.5%의 목회자들은 ‘이중직을 수행하면서 일터에서 목사라는 것을 숨기게 된다’고 응답했고, 5%의 목회자는 ‘이중직에 대한 신학적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 이중직을 선택하는데 가장 큰 고민이라고 밝혔다. 총회에 바라는 이중직 목회자 지원정책 중에서 ‘이중직에 대한 신학적 정립’을 요청하는 목회자는 33.6%에 이르렀다.
이중직 수행여부와 상관없이 전국의 50명 이하 교회 담임목사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별도 조사에서는 ‘이중직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응답이 66.4%로 나왔다. 이번 조사를 실행한 지앤컴리서치는 결과보고서에서 이 부분에 대해 ‘신학적 확신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목회자가 이중직을 갖는 것에 대한 찬반의견을 물었을 때 ‘목회가 어려워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10.4%를 차지한 부분도 비록 소수의견이기는 하지만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 ‘목회자는 성직이므로’(22.5%) ‘목회자의 정체성 혼란 때문에’(18.9%) ‘목회자가 세속화될 우려 때문에’(12.7%) 등 주로 신학적 고민이 담긴 응답들이 다수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중직 논의에 있어서 신학적인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대목인 것이다. 총회자립개발원은 이런 연유에서 목회자이중직지원위원회 산하에 이중직연구위원회와 신학전문위원회를 구성하고, 1차로 지난 1월 20일에 그리고 2차로 3월 31일에 대전중앙교회에서 ‘목회자이중직 신학세미나’를 개최하며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번 호에서는 1차 세미나에서 소개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이중직과 관련된 신학적 쟁점들을 소개한다.
신학적 허용 가능성 열려있어 … 방종 경계해야
목회자 이중직 문제를 제기하면 가장 먼저 성경에서 제기되는 의문이 과연 이중직에 해당하는 모델이나 사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은 사도 바울이다. 이방인 전도를 하던 바울이 천막(tent) 제조를 생업으로 삼으며, 고린도에서 같은 업을 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함께 동역했다는 사도행전 18장 3절의 기록이 명백하게 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어권 교회에서는 이를 근거로 이중직을 수행하는 목회자들을 텐트 메이커(Tent Maker) 혹은 텐트 메이킹 목사(Tent-Making Preacher)로 지칭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차용하고 있다는 게 총신대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치는 양현표 교수의 설명이다.
총회교회자립개발원 주최 제1차 목회자 이중직 신학세미나에서 발제와 토론을 벌이는 신학자들.
바울의 경우와는 반대 사례로 자주 제시되는 것이 구약의 제사장 제도이다. 즉, 제사장들이 속한 레위지파에게는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고, 이들에게는 다만 성전에서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과 기업만 받도록 하신 민수기 18장 26절, 신명기 18장 1~2절 등의 규례가 오늘날까지 성직자들의 이중직을 금지하는 원리로 작동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총신대에서 구약학을 가르치는 김대웅 교수는 “신약시대의 목회자들이 사무엘이나 에스라 같은 구약시대의 충성스러운 제사장들을 본받아 목양이라는 직책과 임무에만 온 마음과 힘과 뜻을 다 쏟아야 한다는 바른 판단이 들어 있다”면서도 “이 주장의 부분적인 타당성보다는 그 한계와 약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대웅 교수에 따르면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신약교회의 목회자는 그 역할의 중대함에 있어서 비교를 통해 연구될 만한 접촉점과 연속성도 있으나, 하나님의 계시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에 있어서 고대 이스라엘 제사장 제도는 신약시대 목회직과 비교될 수 없는 역사적 특수성과 불연속성도 존재한다.
오히려 제사장 시대보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 첫 인류인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제사장으로 임무와 땅을 경작하는 역할을 함께 수행했던 모습이라든지, 아모스나 다니엘처럼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명을 감당했던 선지자들의 사례도 주목하도록 김대웅 교수는 제시한다.
이와 동시에 김대웅 교수는 “목회자가 가질 사회적 직업의 성격은, 에덴의 성전에서 아담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창조 세계의 유지와 조화를 위해 수행해야 했던 경작의 직분처럼 사랑의 봉사여야 바람직할 것” 그리고 “목회자는 선지자 다니엘처럼 자신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통해 언약에 대한 충성, 업무 수행을 통한 성령의 거룩함 증거, 성경 해석자로서 점진적인 성장 등 거룩한 목표들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하나의 신학적 쟁점은 목회자가 이중직을 수행하는 일이 신앙적으로 선악에 대한 판단을 받을 일이냐 하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논의에서 박재은 총신대 조직신학 교수는 화란의 신학자 다우마가 주창한 ‘아디아포라’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아디아포라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선하다고 할 수도 악하다고도 할 수 없는 사물이나 행동을 말한다. 우리는 그 사물을 수용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욱이 그것들은 ‘선하다’혹은 ‘악하다’는 도덕적 판단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정의된다.
박재은 교수는 “목회자 이중직 논의는 아디아포라 영역 속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목회자 이중직 문제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이라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일선 목회자가 목회 외에 또 다른 직업을 가진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거나 혹은 구원에서 탈락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계속해서 박 교수는 지나친 아디아포라적인 자유는 언제나 방종과 오·남용을 빚어낼 수 있다는 약점과, 반대로 아디아포라적인 자유를 가지고 무엇이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까를 총체적으로 고민하며 공공의 유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강점 등을 두루 살펴 목회자 이중직 문제를 논의하도록 제안하기도 한다.
‘아디아포라’ 이슈에 대해서는 다른 접근도 있다. 김요섭 총신대 역사신학 교수는 “개혁교회는 목사 직분의 문제를 비본질적인 아디아포라의 문제로 보지 않고, 바른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확립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 사항들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고 주장한다.
김요섭 교수는 특히 “목사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말씀의 직무에 손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만일 목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데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조금이라도 장애가 생긴다면 목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중직의 가능성을 새로운 기회로 바라보는 태도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만 김요섭 교수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드러낼 수 있다면 목사 직분에 대한 새로운 변화와 시도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변화와 헌신 가운데 무엇이 21세기 한국 사회와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통치를 드러내는 길인가를 놓고 결정해야 한다”면서 이중직 문제는 개인의 선택에 맡길 일이 아니라 총회와 노회에서 신학적 중심을 갖고, 교단의 목회자 수급계획 등도 고려하면서 다루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목회자 이중직 수행은 신학적으로 충분히 허용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되, 다만 목회자의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고유 역할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1차 신학세미나 발표자들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졌다. 2차 세미나에서는 신약신학, 선교신학, 공공신학 등 또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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