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조 목사(커네티컷교협회장, 비전한인교회 담임)
“행복한 예배자”
매일 무언가 하나님께 감사할 일을 찾으려 시도해 보았는가? 행복은 더 큰 욕심, 더 많은 소유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하나님께서 일상 생활속에 이미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에 초점을 맞출때 온다. 내가 맞추는 초점은 내 삶의 품질을 결정한다. 초점을 잘 맟춰야 삶이 행복하듯, 행복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도 초점을 잘 맞춰야 한다. 바울사도는 로마서 12장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사도가 말한 ‘하나님의 자비’란 단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의 반대어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의로움’이다. 내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없게 된다. 그러면, 행복한 예배자가 될 수 없다. 비교종교학자들과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여러 종교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신학적으로 볼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구원을 위해 나의 선행, 업보 쌓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됐고, 구원은 내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종교와 기독교는 구별된다. 기독교 신앙과 종교를 확연하게 구별하는 사건이 출애굽기 24-32장에 나타난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주야 하나님과 단독 교제하며 십계명을 비롯해서 하나님께 참 예배 (True Worship)를 드릴 성막에 대한 규례들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산 밑에 있는 백성들은 모세가 오랫동안 실종됐으므로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아론에게 요구했다. 이에 아론이 굴복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너희 신이로다”(32:4)라면서 우상숭배를 선포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이다. 종교를 숭배 (False Worship)하면 불행한 예배자가 된다. 행복한 예배자가 되는 전제조건은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의롭지 못하고 스스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면 (False Faith), 예배는 어리석고 공허한 행위가 될 것이다. 예배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데 무슨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반면에 내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으면 (True Faith), 예배 드리는 것은 지극히 논리에 맞는 일이다. 예배의 대상이 계시는데 어떻게 예배를 안 드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킹 제임스 영어성경(KJV)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 (Reasonable Act)이라고 번역했다. 17세기 프랑스의 유신론적 철학자요 수학자인 파스칼은, 세상에는 두 종류의 합리적인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첫번째 종류의 사람은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 때문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Worship) 드리는 사람이요, 두번째 종류의 사람은 하나님이 안 계심을 믿기 때문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무시(Ignore)하는 사람이다. 둘 다 각자가 믿는 것을 따라서 행동했으니까 모두 합리적이긴 하다. 그러나 모든 믿음이 다 옳은 것이 아니고, 모든 합리적인 것이 다 옳은 것도 아니다. 과연 어느 것이 구원과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인가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각자의 소견대로 믿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선택했지만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둘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과 바꾸고 하나님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다”(렘 2:11)고 개탄했다. 바울사도도 꼭 같은 말씀을 하였다 (롬 1:23). 마치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제공하는 필레 미뇽 소고기와 야채 샐러드를 외면하고, 맥도날드의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가 더 좋다고 선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께서 참 예배자에게 무한한 축복과 평강의 길을 제공해 주셨는데, 자신의 유한하고 좁은 이성에 사로잡혀 썩어질 세상 것들을 예배하고 있다면 그처럼 우둔하고 불행한 예배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는 행복한 예배자가 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Comments